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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오랜 분쟁의 역사

자아D 2023. 10. 8. 11:54

안녕하세요 이것저것 써보고 있는 자아 D입니다.

세계사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오랜 분쟁은 다들 알고 계실 것입니다.

간단한 이야기를 하자면 토지가 필요한 이스라엘 사람들이 팔레스타인이 모여있는 땅에 강제로 이주하면서 이쪽은 이제 우리 땅 하며 영토를 차지하였고 그 땅에 살아온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반발하며 오랜 분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팔레스타인의 강경 무장 세력 '하마스'가 이스라엘 영토에 미사일을 발사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 것입니다.

미국을 등에이고 있는 이스라엘이라 곧바로 강한 반격을 하겠다고 선언을 했습니다.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도 끝나기 전에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전쟁이 또 시작되는 게 아닌가 걱정입니다.

공격하는-팔레스타인-하마스-공격받는-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영토에서 날라가는 미사일(왼쪽)과 미사일이 떨어진 이스라엘(오른쪽)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의 역사

시오니즘(zionism, 19세기 후반~)

중ㆍ동유럽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에 독립국가를 건설하자는 운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1933년까지 팔레스타인에 23만 8,000여 명의 유대인이 모여들어 아랍인의 반발을 샀습니다.

밸푸어 선언(1917년 11월)

1차 세계대전 중 영국의 외무장관이었던 아서. J. 밸푸어(Balfour)는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의 '민족적 고향 (national home)' 건설을 지지하였습니다. 그러나 영국은 한편으로 1차 대전에서 독일 편에 서있던 오스만제국 내의 아랍인들의 반란을 지원하면서 아랍인에게도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독립국가 독립을 약속(맥마흔 선언)하였습니다. 이처럼 영국은 밸푸어 선언과 맥마흔 선언을 동시에 함으로써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은 물론 중동전쟁의 불씨를 만들었습니다.

유엔 결의 181호(1947년 11월)

영국의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을 분할하여 유대 국가와 아랍 국가를 창설하고, 예루살렘은 국제 신탁통치 지역으로 만들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이스라엘은 1948년 5월 국가를 수립했으나 아랍인들은 이 결의를 거부하였습니다.

6일 전쟁(1967년 6월)

이스라엘은 이집트와 시리아 등에 대해 기습공격을 감행하였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이집트의 시나이 반도와 가자지구, 요르단의 요르단강 서안과 동예루살렘, 시리아의 골란고원 등을 점령하였습니다.

10월 전쟁(1973년 10월)

이집트와 시리아가 이스라엘에 선제공격을 가했으나, 6일 전쟁 때 잃은 영토를 되찾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이스라엘ㆍ이집트 평화조약(1979년 3월)

미국 카터 대통령의 중재로, 이집트가 아랍국 중 최초로 이스라엘을 국가로 승인하고, 양자 평화조약에 서명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이스라엘은 이집트에 시나이 반도를 반환하였습니다.

1차 인티파다(1987~93년)

이스라엘 점령 20년을 맞은 1987년,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의 억압 통치에 대해 투쟁을 전개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투쟁의 결과 팔레스타인인 1,000여 명이 희생되었습니다.

오슬로 협정(1993년 9월)

당시 라빈 이스라엘 총리와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은 상호 실체를 인정하고 테러 중단과 팔레스타인자치정부 수립 가자지구와 예리코에서 이스라엘군 철수 5년 내 추가 철수 등을 규정한 협정에 서명하였습니다.

가자ㆍ예리코 자치협정(1993년 10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간에 체결된,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에 있는 예리코시에 대한 팔레스타인인의 자치에 관한 협정 입다. 

가자지구

가자지구는 40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오래된 도시로 <구약성서>의 삼손이 활동하고 체포된 고사(故事)와 관계가 깊습니다. 이곳은 이집트에서 시리아에 이르는 통로의 요지로 예로부터 그리스, 로마, 아랍, 오스만튀르크 등의 여러 세력에 의해 정복되기도 했습니다. 또 현대에 들어서는 제1차 세계대전 후 영국의 위임통치하에 놓였다가 제1차 중동전쟁(1948~49)에서 이스라엘군과 이집트군의 격전지가 되었으며,  1949년 이스라엘·이집트 휴전협정에 의해 이집트에 편입되었습니다.

그러다 1956년 수에즈 전쟁으로 이스라엘이 점령하였다가 1957년 다시 이집트의 영토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에서 다시 이스라엘이 시나이반도와 함께 점령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이 지역을 점령한 뒤 21개의 유대인 정착촌을 만들고 유대인들을 이주시키기 시작했으며, 그 결과 7000~8000여 명의 정착민이 거주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에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 정착촌이 불법 점거라며 철수를 요구하였습니다.

그러다 1993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해방기구가 점령지 잠정자치원칙에 합의하면서 1994년 5월부터 팔레스타인들의 자치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중동평화 로드맵’에 따라 2005년 8월 15일부터 1967년부터 점령해 온 가자지구에서의 자국민 철수를 단행한 데 이어 같은 해 9월 정착민 보호를 위해 배치한 군 병력까지 정말 철수하였습니다.

그러나 2006년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다시 공격하면서 이곳을 둘러싼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갈등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글을 마치며

 가자지구를 팔레스타인에게 내줘지만 미련을 못 버려서인지 계속해서 공방을 주고받았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그래서 팔레스타인의 영토가 내륙이지만 섬처럼 가자지구가 떨어져 있습니다.

팔라스타인-지도
이스라엘 안에있는 색칠된 부분이 팔레스타인 영토 이다

이번에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세력이 미사일을 쏜 것도 가자지구에서 쏜 것입니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의 친형 같은 존재 미국이 모든 지원을 하겠다고 바이든 대통령이 긴급 연설을 했으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공방으로 사망자가 500명이 넘게 나온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정말 전쟁은 무서운 것입니다. 평화를 사랑하고 평화를 위해 모든 외교가 진행 돼야 할 것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