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것저것 써보고 있는 자아 D입니다.
SBS 꼬꼬무에서 네 모녀 살인사건을 다뤘습니다. 이호성이 범인이었습니다. 이호성은 야구선수로써 큰 성공을 했는데 왜 네 모녀를 살인하고 자신도 자살했을까요?
이제부터 이호성에 대해서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이호성
이호성은 1967년 7월 17일 전라남도 순천 출생으로 182cm 체중 80kg로 광주제일고, 연세대학교 신과대학, 그리고 조선대학교 대학원까지 나왔으며 야구선수로 포지션은 외야수 우투우타로 1990년에 1차 지명으로 해태에서 선수생활을 하게 됩니다.
이호성은 대한민국의 전 야구선수이자 사업가입니다.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제3기 회장직(2대)을 역임한 바 있습니다.
현역 시절 해태 - KIA 타이거즈에서 활약하여 역대 두 번째 20-20 클럽 가입 선수이자 해태의 원 클럽 플레이어로, 현역 시절 팀의 중심 타자로 활약하였고, 팀이 거둔 아홉 차례 우승 가운데 네 차례에 공헌하여 1990년대 해태의 핵심 선수 중 한 명이었습니다.
은퇴 후에는 사업가로 활동하여 예식장 사업까지는 성공가도를 달렸지만, 사업이 너무 잘 된 나머지 경마장으로까지 사업을 넓히려다가 대실패 했고, 이후 SBS 꼬꼬무에서 나온 네 모녀 살인 사건으로 인해 KBO 리그는 물론이거니와 대중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호성의 은퇴 후 사업
2001년에 은퇴한 이호성은 자신의 이름을 딴 웨딩홀인 호성웨딩홀을 운영하며 잘 나가는 사업가가 되어 있었습니다. 당시 인터뷰에 응했던 지인들의 말에 따르면 1년에 10억 가까이 벌 정도로 성공한 사업가였다고 합니다.
실제로 장성호를 비롯한 KIA 타이거즈 선수들 여럿이 이곳에서 결혼식을 치렀습니다. 약 3년여간 사업을 하였고 지방에 2호점, 3호점까지 내면서 전성기를 구가했습니다.
하지만 이호성은 웨딩홀 하나만으로는 만족을 못 했는지 2005년에 실내 스크린 경마장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무려 110억 원 이상의 부도를 내면서 실패했고 기존의 웨딩홀도 접었습니다.
전라남도 순천시에 6층짜리 오피스텔 건물을 짓고 분양 사업을 시도했는데 한국마사회에 '경마장 장외발매소' 모집공고에 신청하여 허가도 따냈었습니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의 대대적인 반발로 사업 허가가 돌연 취소되게 됩니다.
게다가 신행정수도 부동산 개발 관련 사기 혐의에까지 얽히면서 구속되었습니다. 그 뒤 보석으로 풀려났지만 여전히 많은 빚이 남아 있는 상태로 여러 지역들을 이리저리 떠돌아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에서 가정도 깨집니다.
이호성의 양다리
그 과정에서 이호성은 2명의 여자와 사귀면서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습니다. 피해자 김연숙(45)은 은평구 갈현동에서 참치집을 운영하고 있었고 이호성과는 2년 동안 교제해 왔는데 그녀의 전 남편은 우울증으로 오랜 기간 사이가 좋지 않아 사실상 별거나 다름없이 생활해 오다 우울증이 심해져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합니다.
이호성이 살인범으로 지목된 뒤 경찰은 김 씨의 남편의 죽음도 혹시나 자살이 아니라 이호성이 관여한 타살이 아니었는지에 대해 조사했지만 이호성이 자살하면서 이것도 밝혀지지 않은 채 미스테리로 묻혔버렸습니다.
김씨의 주변인들은 김 씨가 사별 직후부터 이호성을 주위에 소개했으며 두 사람의 결혼까지 생각하던 사이라고 진술하였습니다.
하지만 이호성은 일산신도시에 살던 차모 씨와도 사귀고 있었는데 차 씨와는 2007년 8월부터 만나 2007년 12월부터 동거했다고 합니다.
네 모녀 살인 사건
이호성의 두 여인중 횟집을 운여 하던 김연숙 씨는 2008년 2월 18일 횟집 종업원들에게 '며칠 여행을 다녀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연락을 두절되었습니다.
이날 오전에 김연숙 씨는 예금되어있던 1억 7천만 원을 모두 인출하였습니다. 그리고 이호성은 김 씨의 셋 딸을 모두 귀가시킵니다.
그 후 오후 9시 14분~ 56분경 김씨의 아파트에서 이호성은 5차례 드나들면서 대형 가방을 실어나갑니다.
그후 다음날 오전 9시 이호성의 의뢰를 받은 인부들은 화순군에 구덩이를 팝니다. 오후 12시쯤 이호성은 그 구덩이에 피해자들을 암매장하고 화순을 벗어납니다.
이후 김 씨의 오빠가 김씨의 가족과 연락이 되지 않자 경찰에 신고하면서 수사가 진행되게 됩니다.
이호성의 자살
수사의 압박이 점점 자신을 향하자 이호성은 종적을 감췄습니다. 경찰은 공개 수배를 하게 됩니다.
공개수배된 지 몇 시간 만인 2008년 3월 10일 오후 3시 8분,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동 반포대교 남단에서 400미터 떨어진 한강 한가운데에서 이호성의 시신이 발견되었습니다. 향년 40세. 처음에는 신원 미상이었으나 나중에 지문 감식을 통해 이호성으로 밝혀졌습니다. 투신자살로 추정되며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사망 원인은 익사라고 발표했습니다. 이송단의 한 요원이 언급하길 이호성의 시신은 마치 한이 맺힌 듯 끔찍하게 무서운 표정이었다고 합니다.
2008년 3월 9일 이호성은 늦은 밤 성수대교에서 또 다른 여인 차 여인과 만나서 술을 마시면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이호성은 차 여인을 택시로 보내고 그대로 투신자살한 것으로 추측됩니다.
글을 마치며
이호성이 투신하기 전에 차 여인과 31시간 동안 함께 보냈다고 합니다.
차여인은 '이호성은 채무 관계가 복잡하였지만 그렇게 돈에 쪼들리지는 않아서 돈 때문에 범죄를 저지를 정도는 아니었다'는 증언을 했습니다.
SBS 꼬꼬무에서 "이호성은 네 사람을 죽인 살인자다, 어쩌면 다섯 명일 수도 있다"라며 이 가능성을 짚고 넘어가는 것으로 해당 회차의 끝을 맺습니다.
이호성이 죽인 사람은 몇 명일까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