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것저것 써보고 있는 자아 D입니다.
오늘은 지난 SBS 꼬꼬무 방송에서 다룬 서방파 김태촌에 대해서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김태촌
대한민국의 범서방파의 두목, 전직 정치깡패입니다. 조양은의 양은이파, 이동재의 OB파 등과 함께 1970년대-1980년대 범서방파를 이끌고 언론에 3대 패밀리로 불리며 이름을 떨친 폭력조직인 범서방파의 두목입니다.
1948년 10월 10일 전라남도 담양군 출생으로 2013년 1월 5일 향년 64세로 사망하게 됩니다.
전라남도 담양에서 5남 4녀 중 다섯째로 태어난 김태촌의 가정은 평범했습니다. 아버지는 목회활동을 하다가 파출소 근무를 했고, 어머니는 여자는 학교를 안 보내던 시절 중학교를 졸업한 엘리트였습니다.
이후, 광주로 옮겨 북구의 서방시장 근처에서 자라, 초등학교를 겨우 마치고 월사금도 없는 동네 고등공민학교에 들어갔으나, 1학년 때 중퇴, ‘아이스께끼통’을 짊어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신앙을 공부했었지만 동네 깡패들에 어머니가 행패를 당하여 무릎 꿇고 비는 것을 보고 신에 대한 실망감을 느끼고 교회 창문을 깨고 본격적으로 주먹의 세계로 들어섰다고 합니다.
신민당 습격 사건
1976년, 신민당 전당대회 각목 난동 사건으로 정치권과 인연을 가지게 됩니다. 당시 차지철 대통령경호실장과 이철승 신민당 의원의 사주를 받은 김태촌은 수하 조직원 수백여 명을 동원해서 대낮에 신민당사를 습격하고, 전당대회장에 난입해서 난투극을 벌이는 등 정치깡패로서 막장행태를 보였습니다.
이 사건으로 김태촌은 신민당 노동국 차장이 되었으며, 국회의원 공천 약속까지 받아냈다고 합니다. 참고로 이때 김태촌의 나이 고작 25세. 아무튼 이것으로 김태촌은 정계진출까지 꿈꾸게 되지만 이듬해인 1977년 다른 사건으로 체포됩니다. 이용만 당하고 버려진 것입니다.
뉴송도호텔 살인 청부
1985년 김태촌이 교도소에 수감되어 출소가 얼마 안 남았을 때 박남용 부장검사가 김태촌을 찾아옵니다. 안부를 묻고 책을 한 권 선물해 주고 그냥 갔다고 합니다.
김태촌은 교도소에서 출소 후 박남용 부장검사를 찾아가 인맥을 쌓았다고 합니다.
슬슬 둘의 우정이 쌓였을 때쯤 박남용 부장검사는 고민을 김태촌에게 털어 냅니다. 바로 호텔에 투자했는데 호텔이 적자를 보면서 돈을 못 받고 있다는 고민이었습니다.
그 후 김태촌은 뉴송도호텔 사장에게 가서 뉴송도호텔 황사장을 협박을 하고 김태촌이 떠납니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박남용 부장검사의 기이 좋지 못하였는데요 그 이유는 뉴송도호텔 황사장이 경찰에 고발을 해서입니다.
박남용검사가 조폭을 시켜 자기를 협박했다고 황사장이 신고를 합니다. 그래서 박남용 부장검사는 조서를 쓰게 되어 표정이 안 좋았던 겁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박남용 검사는 양사장의 살인을 김태촌에게 제의를 하게 됩니다.
김태촌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만약 황사장이 살해를 당하면, 경찰은 협박한 김태촌을 의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김태촌이 망설이자, 박 검사가 "너도 날 배신하겠다는 거냐"며 불같이 화를 내면서 "너 다시 내가 잡아넣을 수도 있다"라고 협박도 했다고 합니다. 살인은 최하 징역 5년이지만 폭력단체 조직은 최하 징역 10년이라면서 협박합니다. 그러자 김태촌은 박 검사의 명령을 따르기로 했고 몇 가지 조건을 제시합니다.
"1. 절대 사표를 쓰지 말 것. 현직 검사로 남아 사건을 수습할 것.
2. 행동대원 2명을 곧바로 자수시킬 테니, 3년 정도의 징역형을 보장하고 매월 생활비와 옥 수발비를 대줄 것.
3. 만일 내가 구속된다면, 석방되는 그날까지 매달 가족 생활비를 대줄 것.
4, 이 약속을 지킨다는 증표로 혈서를 쓸 것."
위의 주장은 김태촌의 수기에 나와있는 내용입니다. 박 검사가 이 조건을 받아들였고 혈서를 썼다고 했습니다. 혈서의 내용은 신의라는 두 글자였습니다.
1986년 7월 26일 새벽 4시 황사장은 평소처럼 호텔 201호에서 잠을 자고 있었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려서 문을 열어줬고 순간 낫을 든 괴한이 밀고 들어와서는 황사장에게 낫을 휘두르기 시작했습니다. 이사고로 황사장은 양다리가 으스러러지고 괴한들은 도망을 가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 이후로 김태촌은 제주도에서 숨어 지내게 되었지만 박남용검사의 사표를 냈다는 소식에 박남용 검사를 만나러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붙잡히고 맙니다.
김태촌의 말년과 수기
김태촌은 수감 시절 폐암 선고를 받고 병과로 출소를 하게 된 적이 있지만 또 수감되는 등 감옥에서 보낸 시간이 33년이라고 합니다. 그 후 교도소에서 수기로 한 기자에게 편지를 보낸 것이 위와 같은 내용입니다. 이 수기에 김태촌이 돈을 줬다고 등장한 많은 국회의원들이나 권력자들은 하나같이 그 일들을 부정하고 있으며 박남용 검사 역시 저런 일이 없다고 부정하고 있습니다.
김태촌의 이모조모
만신이라 불리는 김성모의 조폭만화에서 김고촌으로 패러디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김태촌은 이상한 밈이 있는데 2007년 배우 권상우를 협박한 내용이 밈으로 한때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나 김태촌인데 너희 집에 불상사가 일어나도 상관없다 이거지?' 이런 문장으로 협박을 하였는데 이것이 인터넷에 떠돌아 '나 김태촌인데 너네 집이 피바다가 돼도 상관없다 이거지?'로 많은 패러디를 양성했었습니다.
특히 이말년 만화에서 많이 사용했는데 '나 오른손인데 네 바지 안이 오줌바다가 되어도 상관없다 이거지' 등 사용이 되었습니다.
김태촌 사망
결국 김태촌은 2013년 1월 5일 폐렴과 심장질환으로 사망하게 됩니다. 향년 63년 감옥에서 생활을 33 연한 김태술은 대한민국의 조폭역사에 빠질 수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장례식장에는 많은 조폭 후배들과 해외 조폭들 야쿠자와 삼합회에서도 조문을 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야구 해설가 하일성, 목사 조용기, 가수 설운도 등 많은 유명인들도 조문을 왔다고 합니다.
글을 마치며
조폭 두목에서 권력에 이용만 당한 김태촌의 일생 33년을 감옥에서 보낸 그의 일생이 참 여우곡절이 많이 있었다고 느껴집니다. 꼬꼬무 말고도 여러 번 방송에서도 다룬 이야기인데 최근 다시 한번 꼬꼬무에서 다뤄 봐서 포스팅 주제로 잡아봤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