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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 최형만이 희망의 아이콘이 되었다. 최형만의 근황

자아D 2024. 3. 18. 12:06

안녕하세요 이것저것 써보고 있는 자아 D입니다.

개그맨 최형만을 아십니까? 몇 년 전에 도올 김욕옥 교수를 흉내 낸 '돌 강의'로 인기를 누렸었던 개그맨입니다. 최형만은 4년 전 안수를 받고 목회자로 살고 있다는데요.

최형만이 왜 희망의 아이콘이 되었을까요? 지금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최형만

최형만은 1967년 8월 5일 생으로 KBS 공채 5기 출신 코미디언, 방송인이었습니다.

개그맨-최형만
개그맨 최형만

최형만은 이북 출신의 아버지에게서 태어났습니다. 1987년 KBS 개그콘테스트에서 데뷔하였습니다. 동작 그만 등 여러 코너에 출연하다가 1991년 12월 9일, SBS TV 개국으로 자리를 옮긴 후 웃으며 삽시다의 랄랄라 선생님이라는 코너에서 서한샘을 패러디하여 인기를 얻었으며, 도올 김용옥 교수를 모사한 '돌 강의'로 주가를 높이기도 했습니다.

이후 단국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진학하여 평균 평점 4.17을 기록하는 등 3년 만에 조기졸업하며 공로상을 수상했습니다.

본의 아니게 방송계를 떠난 후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2020년 4월 28일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교단에서 목사 안수를 받아 현재는 인천광역시 연수구 소재 동춘교회의 부목사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최형만의 사업과 목사

최형만은 목사 활동과 함께 권영찬닷컴 소속의 인기 강사로 활동하며, ‘개그맨을 웃기는 개그맨’으로 기업과 다양한 현장에서 희망과 행복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최형만은 인기 절정의 시기에 TV에서 모습을 감춘 후에 지금 인천의 한 교회에서 부목사로 목회를 보고 있다고 방송에서 소개가 됐습니다. 40대 중반, 늦은 나이에 신학대학원에 들어가서 10년 동안 공부에 매진한 뒤, 4년 전 목사 안수를 받았다고 합니다.

개그맨으로 살았던 인생의 전반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으며, 종종 시간이 될 때마다, 기업과 지자체에서 강연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방송을 통해서 잘 나가던 최형만이 어느 날 갑자기 무대에서 내려와 목회자의 길에 들어선 데는 사연이 전해지며 시청자들의 많은 호감을 얻었습니다. 전성기 시절에는 방송 출연과 야간무대, CF까지 섭렵하며 한 달 수입이 많을 때는 수천만 원에 이를 정도로 부와 명성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개그맨이 내 길인가'라는 의구심이 들었다고 합니다. 가난한 개척교회 목사 아버지와 신앙심 깊은 어머니 슬하에서 자라던 어린 시절부터 “어른이 되면 아버지처럼 살리라”라는 막연히 생각했었기에 더 그랬다고 솔직히 털어놓았습니다.

최형만의 역경

그러던 중 최형만의 돈을 관리하던 어머니가 사기를 당한 뒤 파킨슨병을 앓다가 돌아가시고 설상가상, 최형만도 투자 실패로 빚더미에 올라앉았습니다. 늦게 결혼해서 달콤한 신혼을 보내야 할 시기에 아내와의 불화로 결혼 생활도 평탄치 않았습니다. 인생의 모든 방향이 막힌 듯 답답할 때, 이모를 통해서 어머니가 남긴 유언을 전해 들었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아들과 등지고 살면서도 TV에서 활동하는 최형만을 보면서 “네가 있을 곳은 거기가 아닌데”라며 안타까워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최형만은 개그맨을 웃기는 개그맨에서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최형만은 현재 뇌종양 수술을 거쳐서 건강을 회복했으나, 왼쪽 청력을 상실했다고 합니다.

글을 마치고

최형만에게는 진기한 기록이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모창 기네스북’에 오른 것입니다. 한 소절만 들어도 누구의 모창인지 알 수 있는 실력으로 국내 가수 40여 명의 모창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또 한 가지는 좀처럼 깨지기 어려운 기록을 갖고 있습니다. SBS 창사특집 오락프로그램에서 놀라운 기록을 세웠는데 아무런 기계장치 도움 없이 자신의 점프력만으로 ‘마티즈’ 자동차를 뛰어넘은 것입니다. 지금도 사석에서 “차만 보면 뛰어넘고 싶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는데 경차 이상을 뛰어넘었다는 이야기는 아직 없습니다.

또 다른 이야기는 TV쇼 진품명품 574회(2006.9.10)에 매병을 들고 직접 의뢰인으로 나와 1000만 원을 썼으나, 1만 원에 낙찰되었던 적도 있습니다.

사기와 사업실패로 모은 돈을 다 날리고 어머니와 척을 지고 어머니는 파킨슨병으로 돌아가시고 목자의 길을 선택한 최형만은 뇌졸중 후유증으로 청력까지 상실한 상태에서도 '그래도 희망입니다' 란 주제로 강의를 하고 다니는 강사로도 주가를 올리고 있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